Raster/film

비욘드 사일런스

M.U 2010. 5. 19. 18:47

 

 

비욘드 사일런스
감독 카롤리네 링크 (1996 / 독일)
출연 실비 테스튀, 호위에 세아고, 타타냐 트립, 엠마누엘 라보릿
상세보기



어릴때 본 영화라 자세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소리를 듣지도, 말을 하지도 못하는 부부가 아이를 키운다는게
얼마나 가슴 떨리고 마음 아픈 일인지 알았다.

난 아이가 우는 소리가 신경질 나고 짜증나기만 했지
왜 우는지 그 소리가 부모에게 어떻게 들릴지 생각하지도 못했다.
나는 결혼할 생각도 없고 솔직히 말해서 아이는 좀 어렵다.
그렇지만 내 아이의 우는 소리를 듣지 못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건 정말 절망적이다.

장애라는 것은 왜 있는 것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고
뭐 저딴 쓰레기같은 인간이 다있냐며 경멸하는 인간들도 대부분은 사지 멀쩡한 놈들이다.
( 그러니까 그러고 댕기지.)
장애는 벌이 아니기 때문에 더 가혹하다.

이 영화는 장애를 가진 부모의 입장도,
장애를 가진 부모가 키운 아이의 입장도 모두 보여주었다.

중학교때 자주 같이 하교했던 클래스메이트가
자기집은 너무나도 평범하고 지극히 정상적이라서
자신은 큰 인물이 될 수 없다는걸 알고 있다고 나에게 말했다.
그 애의 말은 요컨데, 큰 인물이 된 사람들은 다들 뭔가 시련이 있기 마련인데 ( 그 애는 편모, 혹은 편부를 예를 들었다.)
자신에게는 그런 일이 전혀 없으며, 일어날 가능성도 없다는 것이었다.

난 그렇구나, 라고 대답하면서 그 애가 뭘 무슨 말을 듣고 싶은건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너네 아빠나 엄마가 죽길 원하니? 라고 물어 볼 수도 없었다.
왜냐면 그 애는 평범한 자기 가정이 자신에게 불행이라고 말하고 있어서 정말 불행해 보였으니까.

난 한번도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따라했다는 청소년 범죄에 대해서
그 드라마나 영화가 잘못됐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하지만 저 애 씩이나 되는 애를 만나고 보니 누군가의 절망이 타인에게는 드라마나 로망이 되버리는구나 라고 느껴졌다. 

혹은 어려서가 아니라 그애는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나도 드디어 내 인생의 드라마가 시작되었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내가 볼때 그애는 연극성인격장애 수준으로 오버하는 아이였으니까.
어차피 그 애와의 친구관계는 얼마 못갔다. 내 생각에는 한 1년 정도 겨우 갔던 것같다.
지금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난 그 애에게 이렇게 말할 것같다.

그 멋진 역활을 왜 남에게 주냐고, 니가 죽어서 누군가의 드라마가 되어주라고.

얘기가 많이 멀어졌는데,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아이가 티비를 등지고 앉아, 엄마를 바라보면서 배우의 대사를 듣고 수화로 자체자막이 되어주던 모습과
아이가 동생이 태어났을때에, 갓난아기인 동생이 소리에 반응이 둔감한듯 했을때 동생의 반응을 미친듯이 쫓아서
동생은 소리가 제대로 들린다는걸 알고 안도하는 그 모습.

확실히 어릴때에 시련을 겪은 아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일찍 철이들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 보다 세태와 처세술에 능하다.
하지만 그게 좋은걸까 정말.
처세술따위 없어도 되니까 상처 없이 자랐으면 좋겠는데.

주인공 여자애 ( 라라였던가?)의 새침한 표정이 좋았었다.